오후 2시쯤 보이스톡이 왔다.
받아 든 전화기에 술 취한 목소리... 이미 만취하여 혀가 꼬인 목소리...
"원아, 내다. 잘 지내나? 이노무 자식... 지금 서면 나올 수 있나? 햄이 술 좀 먹었다. 니 얼굴이 보고 싶네...
햄이 니를 너~~~무 좋아한다 아이가..."
참 여린 사람... 많이 망가지고 있네...
순간, 우짜지?(어떻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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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건 선배는 대학 1학년 때 많이 따랐던 동아리 1년 선배다.
그는 항상 유쾌했고 술도 잘 마셨고 정도 많았다. 사람들도 많이 따랐고 나도 정말 좋아했다.
군 복무를 힘들어했다. 군 복무 중 나에게 1주일에 1통씩 편지를 보내곤 했는데 그는 그렇게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그가 망가지기 시작한 것이 그때쯤으로 생각된다. 술을 마시면 취했고 몸도 가두지 못했다.
군에 가기 전에 매일 술로 보내던 동기들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그래도 공부를 했었다. 뭐 매일같이 술 마시긴 했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술을 좋아하긴 했지만 결혼을 하고 애를 키우며 차를 몰고 다니면서 또 체력에 한계를 느끼면서
술과의 거리를 적당히 하게 되었다.
그 형은 그게 안된 것이다. 그 형은 사랑과 사람에 너무 여렸다. 상처도 많이 받는다.
그러면서 술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친구들도 많이 잃었다. 가족도 잃을 뻔했다.
그래도 한동안 극복하고 잘 지내는 듯했는데 아는 사람과 동업 과정에서 좌절을 겪고 다시 시작되었다.
몇 번 전화 올 때마다 대작하곤 했는데... 그의 말하지 못하는 울분을 들어주곤 했는데...
기억도 못하는 그를 보고 있노라니 연락을 끊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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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해본다.
우짜지... 밤이고 낮이고 전화받을 때까지 전화를 한다. 결국 나도 쉬운 선택을 하게 된다.
수신차단... 하루 지나 미안한 마음에 다시 차단 해제를 하지만...
이제 나도 그의 여린 마음을 계속 받아줄 여유가 없음을...
그가 극복하지 못하면 치료를 받게 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여정이다.
그를 생각하다 보면 김현식의 노래가 떠오른다.
술 냄새 물씬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그 형에게 정신 차리라는 잔인한 말을 했던 나를 위로해본다.
그는 기억하지 못하기에......
빗속의 연가(1986년)
빗속의 연가
작사곡 노래 김현식
연주 봄여름가을겨울
오늘도 내리는 저 빗속을 나 홀로 걷는 이 발길
옛사랑 못 잊는 정처 없는 이 발길
낯설은 골목길 거닐 다가 쓸쓸한 선술집에서
한잔 술에 그리움을 달래 보는데
바람만 불어도 흔들리는 이 내 가슴
옛사랑 못 잊어 흐느껴 우네
오늘도 내리는 저 빗속을 나 홀로 걷는 이 발길
옛사랑 못 잊는 정처 없는 이 발길
바람만 불어도 흔들리는 이 내 가슴
옛사랑 못 잊어 흐느껴 우네